박씨(朴氏)
김씨와 이씨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성인 박씨는 귀화족이 없는 가장 순수한 혈통을 자랑하며 그 이유에서인지 그 세계가 비교적 뚜렷하다. 현재 전해지는 본관은 총 44본으로 이중 밀성대군파의 밀양, 반남, 고령, 순천, 죽산 등이 전체 박씨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앞에서 주지했다시피 박씨는 여러 본관 중 단 1본도 외래 귀화족이 없으며 모두 신라의 시조왕인 혁거세를 유일한 시조로 받들고 있다. 시조 혁거세의 탄생에 관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해진다.
"기원전 69년 신라의 전신인 사로의 육부 촌장들이 어느날 알천 언덕에 모여 나라를 다스릴 군장을 추대할 것을 의논하고 하늘에 제례를 올리던 중, 고허촌장 소벌도리가 우연히 양산 밑의 나정이란 우물이 있는 곳을 바라보니 울창한 숲 사이에서 오색채운의 서기가 뻗치고 그 가운데 한 마리의 용마가 소리쳐 울며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소벌공이 그 곳에 가보니 알 같기도 하고 박 같기도 한 포(胞)가 있어 기이하게 여겨 헤쳐보니 그 속에서 사내 아이가 나왔다. 소벌공이 이 아기를 받들어 동천에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가 나며 새와 짐승도 춤을 추어, 여섯 마을 촌장들은 그의 출생을 신기하게 여겨 아이에게 하례를 올리고 받들어 길렀다. 그 후 기원전 57년(전한 효선제 오봉원년)에 신라의 초대왕으로 삼아 위호(位號:작위와 명호)를 거서간이라 하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하였으며, 박과 같은 알에서 나왔다 하여 성은 박으로 하고 명왕·성왕 혹은 철인·현지자라는 뜻으로 이름을 혁거세라 칭했다."
박씨의 세계는 혁거세의 증손인 파사왕과 일성왕 때 갈라졌는데 파사왕계는 뒤에 영해·면천·강릉·해주·비안·이산·구진·계림·노성으로 분적되었으며, 일성왕계는 그의 26세손인 경명왕과 경애왕에서 다시 갈라져 경명왕계는 그의 아홉 아들이 각기 다음과 같이 분파하였다.
첫째 밀성대군 언침파는 밀양·반남·진원·문의·봉산·영암·창원·구산·태안·의홍·진주·나주·선산·여주·문주·인제·고성·언양·강진·은풍
둘째 고양대군 언성파는 고령
셋째 속함대군 언신파는 함양·삼척·군위
넷째 죽성대군 언립파는 죽산·음성·고성·평산
다섯째 사벌대군 언창파는 상산·상주·충주·평택·남원
여섯째 완산대군 언화파는 전주·무안·순창
일곱째 강남대군 언지파는 순천·춘천·여수
여덟째 월성대군 언의파는 월성
아홉째 국상공 교순파는 울산 등으로 관적되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가구수 : 26,657가구 인구수 : 115,318명)
전체인구의 8.5%로 총 249개 성씨 중 제 3위
[ 강릉 박씨(江陵 朴氏) ]
시조 박순(朴純)은 신라 파사왕의 31세손이며 명종 4년(1174년) 문과에 급제한 후에 병부상서가 되어 석린의 모반을 평정한 공으로 보국정국공신에 올랐다. 후에 좌복야, 중서시랑평장사를 역임하고 계림군에 봉해졌으나 벼슬을 버리고 강릉에 내려가서 자연과 벗하면서 일생을 마쳤다. 후손들이 강릉에 정착하여 대대로 살면서 본관을 강릉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4,643명)
[ 고성 박씨(固城 朴氏) ]
시조 박빈은 신라 경명왕의 넷째 아들 박언립(죽성대군)의 14세손으로 박서 장군의 손자다. 고려 시대에 문하시중을 지냈다. 고려 때 죽산 박씨 철성백파와 후손에게 음성과 고성을 식읍으로 하사함으로써 음성 박씨와 고성 박씨가 철성백파에서 분관한 것이라고 한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4,428명)
[ 고령 박씨(高靈 朴氏) ]
시조 박언성(고양대군)은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둘째 아들로서 본관은 고양과 영천 두 지명을 합하여 고령이라고 하게 되었다. 박섬(朴暹), 박환(朴還), 박연(朴連)을 중시조로 하는 3파가 있으며, 3파 중에서도 박섬의 사인공파(舍人公派)와 박환의 부창정공파(副倉正公派)에서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35,527명)
[ 광주 박씨(廣州 朴氏) ]
시조 박명훈은 고려 때에 전서를 역임했고 후손들이 광주에 정착하여 대대로 살았으므로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광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2,219명)
[ 구산 박씨(龜山 朴氏) ]
시조 박천은 밀성대군 박언침의 15세손이다. 박천은 고려말에 벼슬이 정승에 이르렀고, 조선 초기에는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을 지냈다. 또한 형인 박위와 함께 대마도 대첩에 공을 세워 구산군에 봉해지고, 의홍현(군위군 의홍면)을 중심으로 4개면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다스렸다. 그리하여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구산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4,297명)
[ 군위 박씨(軍威 朴氏) ]
시조 박헌은 신라 경명왕의 셋째 아들인 박언신(속함대군)의 15세손으로서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한 개국원종공신으로서 가선대부에 오르고 공조전서가 되었을 때 본관을 군위로 하였다.
[ 나주 박씨(羅州 朴氏) ]
시조 박병묵(시호는 충무)은 고려 때에 평장사를 지냈으며 나주에 오랫동안 살아온 선비로 그의 선조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나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3,719명)
[ 노성 박씨(魯城 朴氏) ]
노성 박씨의 시조 박연은 조선왕조 개국 당시 감찰을 지냈으나, 그의 선조에 대해서는 실전되어 알 수가 없다. 그 후 후손들이 본관을 노성으로 하고 박연을 시조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111명)
[ 면천 박씨(沔川 朴氏) ]
시조 박득의는 신라 파사왕의 후손으로 고려에서 삼중대광·대승에 이르렀으며 그의 아들 박술희는 고려 태조가 후백제를 칠 때 개국공신에 올라 면천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러나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도승지를 지낸 박주를 1세조로 하고 본관을 면천으로 하였다.
[ 무안 박씨(務安 朴氏) ]
무안 박씨의 시조 박진승은 신라 경명왕의 여섯째 아들인 박언화(완산대군)의 9대손이다. 그는 벼슬이 국자제주에 이르고 고려 초에 공을 세워 무안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무안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64,695명)
[ 문의 박씨(文義 朴氏) ]
신라 경명왕의 장남인 밀성대군(박언침) 언침파 계통으로 그의 17세손인 시조 박의중은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고 대사성을 역임, 명나라에 파견되어 공신이 되었다. 조선 개국시 조 준·정도전 등과 함께 「고려사」를 수찬하고 검교 참찬의부사가 되었으며, 그의 아들 연(衍)이 정사공신으로 문의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문의로 하고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3,114명)
[ 문주 박씨(文州 朴氏) ]
시조 박한보는 인제대군의 후손이다. 그의 아들 박광은 태조 이성계의 할아버지 이도조의 장인이나 그 이외의 사실은 알 수가 없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128명)
[ 밀양 박씨(密陽 朴氏) ]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첫째 아들 박언침(밀성대군)이 밀성(밀양)대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박언침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밀양으로 하였다. 밀양 박씨는 모든 박씨 가운데 제일 종가이며 밀양 박씨에서 10여 개의 본관으로 나뉘어지고, 밀양 박씨 내에서도 여러개로 분파되어 있다.
계파〕
문하시중공파 : 8세손 박언부, 은산공파(박영균), 행산군파(박세균), 좌상공파(박상례), 규정공파(16세 박현), 사문진사공파(10세 박원), 밀성대군(13세 박척)로 다시 나뉨.
·도평의사사사공파 : 8세손 박언상
·좌복야공파 : 8세손 박언인
·밀직부사공파 : 8세손 박양언
·판도공파 : 8세손 박천익
·좌윤공파 : 8세손 박을재
·동정공파 : 13세손 박원광
·밀직부원군파 : 15세손 박중미
·정국공파 : 15세손 박천
[ 반남 박씨(潘南 朴氏) ]
시조 박응주(朴應珠)는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반남현(나주)에서 대대로 살아오던 선비집안의 후손으로 호장을 지냈고, 그의 6세손 박은이 조선초기 왕자의 난 때 태종을 도와 익재동덕좌명공신으로 좌의정에 이르렀고 반남군에 봉해졌다가 금천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박응주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반남으로 하였다.
[대표적 인물]
박은, 박숭질(崇質), 박세채(世采), 박종악(宗岳), 박종훈(宗薰), 박회수(晦壽) 등의 상신, 박태상(泰尙), 박규수(珪壽) 등의 대제학, 박세당(世堂), 박지원(趾源) 등의 뛰어난 학자가 있으며, 박소(紹), 박응남(應男), 박응복(應福), 박태보(泰輔) 등의 인물이 있다.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215명, 상신 7명, 대제학 2명, 왕비 2명과 조선 후기에 판서급 인물을 많이 배출하여 박씨 중에서 벼슬이 가장 화려하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18,838명)
[ 봉산 박씨(鳳山 朴氏) ]
시조 박간은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첫째 아들 박언침(밀성대군)의 12세손이다. 조선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판서를 지내고 봉산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봉산으로 하였다.
[ 비안 박씨(比安 朴氏) ]
시조 박우의 선계는 문헌이 실전되어 상고할 수 없다. 「동국만성보」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고려에서 문하시중을 지내고 벽상공신으로 병산염에 봉해졌다. 여러대에 걸쳐 비안에 정착 세거하면서 본관을 비안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2,747명)
[ 사천 박씨(泗川 朴氏) ]
혁거세의 48세손인 사천 박씨 시조 박자문은 그의 할아버지 박인겸이 고려 충렬왕 때 사천군에 봉해지고, 자문 그 자신도 공민왕 때 호부상서를 지내고 사천군에 봉해졌다. 그 후 안변으로 이거한 후 후손들이 전세거지인 사천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110명)
[ 삼척 박씨(三陟 朴氏) ]
신라 경명왕의 9형제 중 셋째 아들인 속함대군 언신파에 속하는 삼척박씨는 고려조에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 삼철부원군에 오른 박원경을 일세조로 하고 있다. 그는 고려가 망하자 지리산에 은거하면서 면학에 힘써 제자들을 양성하니 그의 문하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따라서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삼척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4,000명)
[ 상산 박씨(商山 朴氏) ]
시조 박언창은 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의 9형제중 다섯째 아들로 사벌대군에 봉해졌다. 당시 사벌주는 고려와 후백제간의 각축장이었기에, 경명왕은 대군(大君)을 시켜 사벌주를 방어하도록 명하였다. 이에 대군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견훤을 격파하여 진지를 구축하였으나, 고려의 개입으로 본국과 교통이 끊어지게 되었다. 그는 사벌주를 지키기 위해 사벌국이라 하고 왕으로 자립하여 통치하다가 11만에 후백제에게 패망하였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확인할 수가 없어서 고려 때 덕천창부사를 지낸 견(甄)을 1세조로 하고, 사벌국이 고려 초에 상산군으로 개칭되었으므로 본관을 상산으로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3,377명)
[ 상주 박씨(尙州 朴氏) ]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인 사벌대군(언창) 언창파 계통인 상주 박씨는 박여(呂)를 일세조로 삼는다. 그는 언창의 12세손으로 고려 충렬왕 때 삼중대광 첨의 찬성사를 지냈고 상산부원군에 봉해졌다. 따라서 그의 후손들은 상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20,246명)
[ 선산 박씨(善山 朴氏) ]
밀성대군 언침파의 계통으로 시조는 박언침의 22세손인 박선민이다. 그는 부모의 은덕으로 벼슬길에 올라 목사에 이르렀고 선산을 관적으로 받았다. 그의 증손인 숭(崇)이 영의정으로 있다가 함북 명천에 유배가게 되어 그곳에 정착하면서, 후손들이 선산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021명)
[ 순창 박씨(淳昌 朴氏) ]
경명왕의 여섯째 아들인 완산대군 언화파 중 하나인 순창 박씨는 고려 시대 순창군에 봉해진 박제세의 후손이라 하나 병화(兵火)로 상계가 실전되어 정확한 계대를 알 수 없어 후손들은 첨정을 역임한 두간을 일세조로 하고, 본관을 순창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783명)
[ 순천 박씨(順天 朴氏) ]
시조 박영규(朴英規)는 신라 경명왕의 일곱째 아들 박언지(강남대군)의 아들이다. 그는 고려 태조를 도와 부인 견씨와 함께 견훤의 세력을 추출하는데 공을 세워 고려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좌승에 제수되었으며 승주(순천)군에 봉해졌다. 그 후 후손의 기록이 없으므로 후손 박난봉이 고려시대에 과거에 등과하여 정승을 역임하고 평양(순천) 부원군에 봉해지자 그를 득관조로 하였고 그 후의 기록이 없어서 대제학을 지낸 중시조 박숙정(朴淑貞)을 1세 조상으로 하여 본관을 순천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75,888명)
[ 여주 박씨(驪州 朴氏) ]
경명왕의 맏아들인 밀성대군 언침의 20세손인 여주박씨의 일세조 박지석은 중훈대부(中訓大夫:조선 때 정 3품의 문산계)에 올라 사재감 부정을 역임하였으며, 아버지 환이 여주에서 함흥으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다. 그 후 그 후손들이 원래 고향인 여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433명)
[ 영암 박씨(靈巖 朴氏) ]
밀성대군(박언침) 언침파 계통인 영암 박씨는 박항을 시조로 하고 있다. 그는 언침의 10세손으로 고려 인종 때 벼슬이 좌정승에 이르렀으며 정사공신으로 영암군에 봉해졌다. 따라서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영암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5,670명)
[ 영해 박씨(寧海 朴氏) ]
시조 박제상은 신라 5대 파사왕의 후손으로 눌지왕 때의 이름난 충신이다. 박제상의 26세손인 박명천이 고려 때 벽상공신으로 자금어대를 하사받고 예원(영해)군에 봉해지므로, 후손들이 영해를 본관으로 하였다.
[ 운봉 박씨(雲峰 朴氏) ]
경명왕의 9형제 중 장남인 밀성대군 언침파 중 하나인 운봉 박씨는 시조를 박중화로 하고 있다. 그는 혁거세 40세손으로 고려 말에 도첨의 찬성사를 지내고 운봉군에 봉해졌기에, 그 후손들이 본관을 운봉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469명)
[ 울산 박씨(蔚山 朴氏) ]
시조 박윤웅은 혁거세 36세손으로 신라 경명왕의 아홉째 아들 국상공 교순파 계통이다. 그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숙종 때 여진족을 물리쳐 대장군이 되고 익찬공신에 올라 홍려(울산)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울산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8,323명)
[ 월성, 경주 박씨(月城, 慶州 朴氏) ]
시조 박언의(朴彦儀, 월성대군)는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여덟째 아들이다. 경명왕의 아들 8대군이 각각 본관을 나눌 때 본관을 월성으로 하였다. 고려 때에 재능직을 지낸 박인육(朴仁育)을 중시조 1세조상으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월성/경주) : 20,506/21,814명)
[ 은풍 박씨(殷豊 朴氏) ]
시조 박치온(朴致溫)은 신라 경명왕의 첫째 아들 박언침(밀성대군)의 후손이나 박언침 이후의 기록이 없어서 조선 개국 초에 군수를 지낸 박치온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은풍(풍기)을 본관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510명)
[ 음성 박씨(陰城 朴氏) ]
시조 박서(朴犀)는 고려 시대의 유명한 장군으로 신라 경명왕의 넷째 아들인 박언립(죽성대군)의 11대손이다. 그가 1231년(고려 고종 18) 서북면 병마사로 있을 때 몽고군을 대파하여 그 뒤 벼슬이 문하시랑 평장사에 이르고 음성백에 봉해졌다. 그는 원래 죽산 박씨였으나 음성백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이 박서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음성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6,317명)
[ 인제 박씨(麟蹄 朴氏) ]
시조 박율은 혁거세 29세손 경명왕의 9형제 중 첫째인 박언침(밀성대군)의 손자이다. 그는 고려 조에 인제군에 봉해지니 후손들이 본관을 인제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482명)
[ 전주 박씨(전주 박씨) ]
시조 박언화는 혁거세 29세손인 경명왕의 9형제 중 여섯째로 완산(전주)대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전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3,080명)
[ 죽산 박씨(竹山 朴氏) ]
시조 박기오(朴奇悟)는 신라 경명왕의 넷째 아들 박언립(죽성대군)의 아들로 고려 초 삼한벽상공신·태보삼중대광으로 계림군에 봉해졌다가 그 후 죽주(죽산)백에 봉해지고 죽주를식읍으로 하사받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본관을 죽산으로 하였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철성백파의 후손에게 음성과 고성을 식읍으로 하사함으로써 음성 박씨와 고성 박씨가 철성백파에서 분파한 것이라고 한다.
〔계파〕
죽산 박씨는 철성백파(鐵城伯派), 찬성공파(贊成公派), 태복경파(太僕卿派), 문광공파(문광공파(文匡公派) 등 4파로 갈라지고, 다시 문광공파에서 죽산공파(竹山公派), 문충공파(文忠公派), 판서파(判書派), 제학파(提學派), 충현공파(忠顯公派) 등 5파로 나누어진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45,058명)
[ 진원 박씨(珍原 朴氏) ]
시조 박진문은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의 8대군 중, 맏아들인 박언침의 13세손이다. 이 태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호당에 뽑히고, 청백리에 뽑히게 되니 진원(장성에 속한 현)군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진원으로 하였다. 구진 박씨라고도 한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9,982명)
[ 창원 박씨(昌原 朴氏) ]
시조 박유화(朴有華)은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첫째 아들 박언침(밀성대군)의 13세손으로 고려 시대에 감문위대호군 평장사를 지냈다. 그의 증손 박영(朴齡)이 고려 공민왕 때 창원도호부사를 지내고 창원군에 봉해져서 밀양 박씨에서 분관하여 본관을 창원으로 하였다. 의창 박씨라고도 한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6,000명)
[ 춘천 박씨(春川 朴氏) ]
시조 박항(朴恒)은 신라 경명왕의 일곱째 아들 박언지(강남대군)의 11세손이다. 그는 고려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에 봉직되고 충주 목사를 거쳐 충렬왕 때 동지밀직사로 원나라에 다녀와 좌명공신이 되고 춘성(춘천) 부원군에 봉해졌다. 이어 삼중대광 문하찬성사를 역임하고 원나라 세조가 일본을 정벌하려고 군기와 군량을 징발할 때 지도와 홍차구 등이 감독을 하며 횡포를 부리자 원나라 세조에게 글을 올려 이를 막았다. 문장이 뛰어나고 모든 일에 공명정대했다. 후손들이 춘천에 대를 이어 살면서 본관을 춘천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2,885명)
[ 충주 박씨(忠州 朴氏) ]
시조 박영(朴瑛)은 신라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박언창(사벌대군)의 10세손(박혁거세의 39세손) 박견의 손자다. 그는 고려 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부정을 지냈다. 충주는 고구려 영토로 국원성이었는데 신라 유리왕 때 점령하여 진흥왕 때 소경(작은 서울)으로 하고 귀족인 박씨로 하여금 다스리게 했다. 그래서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면서 박씨에서 분관하여 충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이 가문 출신으로 문장에 뛰어나 한문사가주의 한명인 박상(祥)이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23,617명)
[ 태안 박씨(泰安 朴氏) ]
시조 박원의는 혁거세 29세손 경명왕의 맏아들 밀성대군의 13세손이다. 그는 고려 때 광록대부, 상서좌복야를 지내고 태안군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그의 후손들이 태안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4,498명)
[ 태인 박씨(泰仁 朴氏) ]
시조 박언상(朴彦祥)은 신라 경명왕(박혁거세의 29세손)의 첫째 아들 박언침(밀성대군)의 8세손이며 검교대부 박찬행의 둘째 아들로서 고려 문종 때 도평의사사를 지냈다. 그의 8세손 박거인이 고려 말에 인의현(태인)에 유배되어 그 곳에 정착하여 살게 됨으로써 그의 증손 박연생이 본관을 태인으로 하였다. 중시조는 그의 후손 박현손(朴賢孫)이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588명)
[ 평산 박씨(平山 朴氏) ]
시조 박지윤은 고려 태조의 비 박씨의 아버지로 벼슬은 삼중대광 시중에 이르렀으며 평산에 대대로 살았기 때문에 평산을 본관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274명)
[ 평주 박씨(平州 朴氏) ]
시조 박수경은 박혁거세의 후손으로 평주에 침입한 견훤을 물리친 공으로 원보(영의정)가 되고 개국공신으로 평주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평주를 본관으로 삼았으나, 후손에 대한 기록이 없어져서 박광렴을 1세조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13명)
[ 평택 박씨(平澤 朴氏) ]
시조 박지영은 경명왕의 다섯째 아들 박언창(사벌대군)의 후손으로, 조선 시대에 평택현사를 지냈으며 그의 아들 박산(山)이 형조참판으로 있던 중 화를 입어 경원으로 유배되었기에 그 곳에 정착해 살면서 평택을 본관으로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조사 인구수 : 1,153명)
[ 함양 박씨(咸陽 朴氏) ]
시조 박언신(朴彦信, 속함대군)은 신라 경명왕의 셋째 아들이다. 그가 속함대군에 봉해짐으로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였으나 문헌이 없어져서 고증을 하지 못하고 고려 때 예부상서를 지낸 박선(朴善)을 중시조로 하고 1세조상으로 하였으며 속함이 함양으로 개칭되어 본관을 함양으로 하였다. 고종 때 이연년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응천군에 봉해진 박신유의 여섯 아들에서 6파로 갈라졌으며 세칭 '육지파(六之派)'라고 한다. 중시조 박선의 묘소는 경남 함양군 함양읍 사금동에 있다.
〔계파〕
·문원공파 : 박지빈
·판삼사사공파 : 박지량
·부사공파 : 박지수
·어사공파 : 박지온
·중랑장공파 : 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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